숏폼 콘텐츠는 이제 단순한 유행이 아닌, 마케팅과 브랜딩의 핵심 채널로 자리 잡았다. 오늘은 이 숏폼 콘텐츠 기획 과정에 AI 아이디어 도구를 도입해본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해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인스타그램 릴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15초에서 60초 안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용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시대이다. 짧고 빠르게, 하지만 임팩트 있게. 이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콘텐츠 제작 기술이 아닌, ‘기획력’과 ‘아이디어의 속도’가 핵심 자원이 된다. 문제는 이 아이디어를 매일, 매주 새롭게 짜내야 한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콘셉트와 한정된 소재 안에서 창의성을 유지한다는 건 기획자에게 끊임없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우리 팀 역시 콘텐츠를 운영하면서 아이디어 회의에 점점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콘텐츠의 품질 저하로 이어졌다. 늘 같은 형식, 비슷한 흐름, 유사한 멘트. 이 흐름을 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바로 AI 도구의 도입이었다. 단순한 텍스트 생성 이상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이번 실험은 ‘기획자의 일하는 방식이 AI에 의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콘텐츠의 출발점인 아이디어 단계에서부터 대본 구조, 비주얼 콘셉트 설정, 그리고 반복 회의 대체 가능성까지 폭넓게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단순히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팀 내부의 협업 방식과 창작 리듬까지 바꾸는 경험이었다.
반복된 기획 회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
숏폼 콘텐츠를 운영하다 보면 일정 주기로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순간이 온다. 특히 브랜드 채널을 운영할 경우, 콘셉트나 어조를 크게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비슷한 포맷의 콘텐츠를 계속 생산해야 한다. 회의는 점점 무의미해지고, '이번 주엔 뭘 올리지?'라는 막연한 고민이 반복된다. 실험 이전, 우리 팀도 매주 회의에서 아이디어 10개 이상을 짜내려 애썼고, 결국은 과거의 콘텐츠를 조금씩 바꾸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AI 도구를 사용한 첫 주에는 ‘Midjourney+ChatGPT’를 활용해, 감성 키워드에서 출발한 콘셉트 기획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봄 감성 + 커피”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GPT는 ‘비 오는 날, 커피 한 잔을 둘러싼 3초 컷 감정 변주’ 같은 짧고 명확한 콘셉트를 제안했고, 이를 기반으로 영상 구성을 빠르게 확장시킬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새로운 회의 방식’으로 작용했고, 팀원들도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점점 AI의 응답을 기획 회의의 시작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팀원 각자의 아이디어가 점점 AI와 섞이면서 상상력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AI는 ‘이걸 이렇게도 풀 수 있어?’라는 자극을 주었고, 반복되는 틀을 깨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트리거 역할을 했다. 이 점에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팀 브레인스토밍의 촉매로 기능하고 있었다.
키워드 하나로 펼쳐지는 5가지 콘셉트
이번 실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 가지 키워드에서 상상할 수 있는 콘셉트의 폭이 AI를 통해 극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하루 루틴’이라는 단어를 입력했을 때, 내가 직접 떠올릴 수 있었던 기획안은 ‘모닝 루틴’, ‘밤 10시 전 루틴’ 정도였지만, AI는 ‘하루 3분 스스로 칭찬하는 루틴’, ‘모든 걸 놓고 5분 멍 때리는 루틴’, ‘루틴의 실패로 하루가 더 나아진 사례’ 등 의외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제시해주었다.
이처럼 AI는 인간이 피로하거나 망설이는 시점에서도 ‘창의적 발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트렌드 키워드(예: #조용한사직, #갓생살기, #루틴붕괴 등)를 입력했을 때 GPT는 해당 키워드의 맥락을 분석하고, 숏폼에 맞는 구성 요소까지 포함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시하였다. 덕분에 매번 제로에서 시작하던 기획 회의가, 이제는 콘셉트 뿌리를 중심으로 5~7개의 방향을 빠르게 정리하고 선택하는 프로세스로 바뀌었다.
이것은 단순히 ‘아이디어가 많아졌다’는 것을 넘어서, 콘텐츠 생산 방식 자체를 구조화하고 체계화할 수 있게 된 변화였다. 감에만 의존하던 기획이 AI의 구조화된 발상 흐름과 만나면서 기획자의 작업 피로도는 줄고, 선택지는 늘어난 것이다.
대본 작성과 비주얼 디렉션에 미치는 영향
AI 도구는 기획 초안 단계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실험한 대부분의 릴스 콘텐츠는 자막 중심 구조이기 때문에, ‘짧고 리듬감 있는 대본’이 영상의 성패를 좌우한다. GPT는 일정한 톤과 간결한 어투를 유지하며 자막 텍스트를 작성하는 데에 강점을 보였다. 예를 들어 ‘3초 안에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한 줄’을 만들어달라고 했을 때, 예상 외의 어휘 조합이나 리듬 있는 표현을 곧잘 제시했다.
또한, Midjourney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는 비주얼 디렉션을 구상할 때 강력한 도우미 역할을 했다. 영상 스토리보드를 그리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GPT가 제안한 대본을 Midjourney에 넣어 몇 가지 이미지 샘플을 생성하면, 콘셉트가 시각화되면서 기획 단계의 확신이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대본 작성 → 시각 방향 제안 → 텍스트 보정 → 피드백 순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AI가 일정한 역할을 분담하며 팀 전체 기획 속도와 질을 끌어올리는 촉진제 역할을 한 셈이었다.
다만, AI가 만들어내는 문장이 항상 우리 브랜드의 말투나 고객 감성에 맞지는 않았기에, 마무리 편집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하지만 초안 단계에서의 발상과 표현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정교한 부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였다.
기획자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정의되었다
AI 도구를 도입하면 기획자의 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는 이번 실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AI의 등장은 기획자의 역할을 ‘아이디어 생성자’에서 ‘선택하고 해석하는 사람’으로 재정의해주었다. AI는 다채로운 결과물을 제공했지만,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 어떻게 변형할지, 어떤 시선으로 전달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철저히 인간의 몫이었다.
또한, AI가 제안한 결과물의 맥락을 해석하고,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톤앤매너에 맞게 재조립하는 일은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었다. 기획자는 이제 더 이상 ‘0에서 1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1을 10으로 확장시키고, 불필요한 9를 덜어내는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기획자의 전략적 사고와 브랜드 감각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팀원들 간에도 ‘누가 더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AI를 잘 활용하고, 브랜드에 맞게 녹여내는가’가 새로운 역량이 되기 시작했다. 결국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력, 기획력, 시선의 깊이를 더 빛나게 해주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 실험은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실험이 아니었다. 우리가 AI를 도입한 이유는 반복되는 아이디어 피로, 짧은 제작 일정, 과포화된 숏폼 시장에서 새로운 발화 지점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부분 충족되었다. 특히 AI가 기획 회의에서 시작점을 만들어주고, 아이디어의 결을 다양하게 펼쳐주는 데 탁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기획 방식이 AI를 포함한 하이브리드 사고 구조로 점차 진화할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을 AI에 의존할 수는 없다. 브랜드 고유의 언어, 타겟에 맞는 정서, 실제 콘텐츠의 디테일은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하지만 '0에서 1'을 만드는 부담을 덜고, '아이디어의 흐름'을 빠르게 확장해준다는 점에서 AI는 가장 효율적인 협업 파트너였다. 특히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영감을 다시 켜주는 역할을 한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콘텐츠 팀, 브랜딩 팀, 프리랜서들이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창작 흐름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구보다 먼저 자신만의 감각을 잃지 않는 기획자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