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책을 쓴다는 것이 전문가나 작가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출판 플랫폼과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경계를 빠르게 허물고 있다. 오늘은 생성형 AI와 협업해 전자책 한 권을 쓰는 실험을 진행한 기록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콘텐츠를 발행하는 것은 더 이상 인쇄소나 출판사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고, 특히 전자책은 누구나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다만 “책을 써야지”라는 결심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한 권의 전자책을 완성하는 과정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을 갖고 있다. 이번 도전은 단순히 빠르게 글을 써보자는 것이 아니라, AI를 활용한 콘텐츠 생산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하고, 인간의 개입이 어디에서 가장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다. 주제 선정부터 구성, 각 장별 집필, 피드백 반영, 편집 및 최종 ePub 파일 제작까지의 전 과정을 AI와 함께 진행했고, 그 성과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구조’가 없을 때, AI가 도와주는 것들
전자책 작성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책의 전체 구조이다. 누구나 머릿속에 쓰고 싶은 주제 하나쯤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챕터별로 나누고, 어떤 흐름으로 설명하며, 중간에 독자의 피로감을 줄일지에 대한 감각은 갖고 있지 않다. 나 역시도 “생산성 도구 사용법에 대한 전자책을 써보자”는 목표만 있었지, 그것을 어떻게 설계할지 막막한 상태였다.
이때 ChatGPT를 활용해 “이 주제로 전자책을 쓸 때, 목차 구성 예시를 5개만 제안해줘”라고 요청하자 AI는 즉시 명확한 프레임을 제안해주었다. ‘이론적 배경 → 실전 사례 → 툴 설명 → 루틴 정립 → 마무리 조언’이라는 식의 흐름은 기존 전자책에서도 자주 쓰이는 구조였고, 실제로 적용해보니 내 생각이 훨씬 잘 정리되었다. 이처럼 AI는 ‘두서없는 생각’을 ‘독자가 따라올 수 있는 구조’로 바꿔주는 데 강점을 보였다.
이후 각 장별로 어떤 내용을 넣을지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참고할만한 문서나 기사 링크를 던져주면, AI는 이를 요약해 문단의 개요로 바꿔주는 데도 매우 유용했다. 특히 내가 놓친 개념, 당연히 알고 있지만 설명하지 않은 개념을 AI가 “이 부분도 독자에게는 생소할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해줄 때, 마치 편집자와 공동 기획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AI는 아이디어의 양을 늘려주는 도구라기보다는, 아이디어의 결을 정리하고 콘텐츠 흐름을 입체화해주는 파트너였다. 글을 쓰기 전 단계에서 ‘무엇을 쓸까’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순서로 말할까’를 고민할 때, AI는 매우 유용한 협업 대상이 되었다.
초안은 AI가, 다듬기는 내가: 60% vs 40%의 작업 분배
챕터별 초안을 쓸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속도였다. 일반적으로 글 한 장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 설정, 리서치, 문장 구성, 반복된 수정을 거쳐야 하는데, AI와 협업한 이번 실험에서는 초안 단계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간단한 개요나 글감만 던져주면 GPT는 수 분 안에 700~1,000자의 단락을 완성해주었고, 그것은 나에게 ‘시작점’을 제공해주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초안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AI가 작성한 글은 얼핏 보기에는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말투의 일관성, 반복적인 표현, 감정의 리듬 등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필요했다. 특히 내 이름으로 출판할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문장마다 내 언어가 녹아 있어야 했다.
그래서 작업 방식은 자연스럽게 ‘AI가 1차 초안 → 사람이 문체 다듬기 및 핵심 강조 → 다시 AI에게 검토’라는 루틴으로 고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문장을 왜 여기서 쓰는지”, “이 예시가 독자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 등을 판단하고 조정하는 일이 나의 주된 역할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글쓰기의 60%는 AI가 맡고, 나머지 40%는 사람이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방식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AI가 다 해주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오히려 AI가 만든 문장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강조하고 싶은지를 더 명확히 알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막히는 순간마다 받는 피드백, AI는 좋은 ‘거울’이다
책을 쓰다 보면 글이 막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걸 이렇게 설명해도 될까?’, ‘중복된 느낌인데 다시 써야 하나?’, ‘이 주제와 이 예시가 맞는 연결인가?’ 등 고민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손이 멈추고, 그 상태로 하루 이상 흘러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AI와 함께 쓴 이번 전자책에서는 이런 ‘정체 구간’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GPT를 ‘글쓰기 도우미’가 아닌 ‘피드백을 즉시 주는 파트너’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특정 문장을 던지고 “이 문장이 너무 평범한데, 독자의 시선을 끌도록 다시 써줄 수 있어?”라고 요청하거나, “이 예시가 어색해 보이는데 대체 사례를 추천해줄 수 있어?”라고 묻는 방식으로 사용하자, AI는 망설임 없이 3~5개의 대안을 제시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수정이 필요했지만, 중요한 건 그 피드백이 즉시 가능하고, 아이디어의 연결을 끊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한 AI는 글을 중간에 끊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내가 쓰다가 멈춘 문장을 마무리하거나, 단락 간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을 때 “앞 문장과 흐름이 맞도록 이어줘”라고 요청하면 즉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은 특히 장기 프로젝트에서 흔히 발생하는 ‘심리적 피로’와 ‘자기 의심’을 줄여주는 데 효과적이었다.
결국 AI는 내 글을 대신 써주는 존재가 아니라, 내 생각을 끊기지 않게 도와주는 ‘거울’이자 ‘청중’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혼자 쓰는 책이라도,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쓰는 것 같은 안정감이 있었고, 그 점은 생산성뿐 아니라 심리적 지속성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졌다.
편집과 마무리 단계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가치
책 한 권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마지막 단계는 늘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전체 구조를 다시 살펴야 하고, 앞뒤 흐름의 일관성, 문체 통일, 어색한 표현, 반복 제거 등 다양한 요소들을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 AI와 함께 전자책을 쓰면서도 이 마지막 구간에서는 사람의 개입이 가장 강하게 요구되었다.
예를 들어, AI가 작성한 각 장의 길이나 문단 호흡은 비교적 일정하지만, 전체 책의 흐름을 봤을 때는 집중도가 높아졌다가 떨어지거나, 강조점이 어긋나는 구간이 생기기 쉬웠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기획자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전체 맥락에서 각 문장의 역할을 점검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AI는 제안은 할 수 있어도 결정은 못하는 존재였다.
또한, AI는 편집 스타일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은 줄 수 있어도, ‘마무리 감정’이나 ‘작가의 목소리’를 마무리 짓는 데에는 다소 어색함이 있었다. 특히 후기를 담은 마지막 장에서는 내 목소리로 솔직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독자에게 거리가 느껴졌다. 결국 전자책의 핵심은 콘텐츠의 논리뿐 아니라 정서적인 완결성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터치는 사람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했다.
마지막에는 ePub 형식으로 변환하고, 이미지와 표지를 삽입하는 실무 단계까지도 AI가 일정 부분 가이드를 제공해줬지만, 이 역시 최종 확인과 선택은 사람이 해야 했다. 결국 AI는 ‘공동 작가’라기보다는 ‘집필의 가속 장치’에 가까웠으며, 결과물을 책임지는 것은 끝까지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번 실험을 통해 확인한 가장 큰 사실은, AI는 책을 쓰는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춰주는 존재라는 점이다. 아이디어를 구조화하고, 초안을 빠르게 정리하고, 막힌 문장을 뚫어주는 데 있어 AI는 그야말로 강력한 생산성 파트너였다. 혼자서는 멈췄을 글이, AI 덕분에 끝까지 이어졌고, 결국 하나의 결과물로 묶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느낀 것은, 책을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는 점이다. AI는 문장을 써줄 수 있지만, 의미와 감정, 맥락을 끝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구조는 도와주지만, 맥락의 깊이를 결정하는 건 인간의 사고력과 통찰이다. 독자와의 신뢰는 정제된 언어에서 나오지만, 그 언어에 담긴 진심은 여전히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결국, AI와 함께 전자책을 쓰는 것은 기술과 감성이 만나는 하나의 협업 실험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구를 활용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구보다 나의 의도가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AI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닌, 창작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조력자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