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이 글에서는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시간대별로 나누어, 나의 루틴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보려 한다. 이는 완벽한 이상적인 루틴이 아니다. 누군가의 현실적인 참고가 되거나, 나처럼 유동적인 일상을 사는 누군가에게 작은 공감이 되기를 바란다. 고정된 출퇴근도, 정시 퇴근도 없는 생활 속에서 어떻게 업무와 육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분배하고 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24시간이 명확하게 ‘업무 시간’과 ‘휴식 시간’으로 나뉘는 반면, 또 어떤 이에게는 하나의 긴 전선처럼 얽혀 있다. 나의 하루는 후자에 가깝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동시에 아이를 돌보고, 집이라는 공간에서 재택근무를 지속하고 있다. 업무용 카메라 바로 옆에 분유와 기저귀가 있고, 이메일 답장을 하다 말고 그림책을 펼쳐줘야 할 때가 많다.
새벽 5시~7시: 모두가 잠든 시간, 나만의 집중 시간
하루의 시작은 새벽 5시이다. 이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알람을 맞춰 일어난다. 아이가 깨어있지 않기에, 방해받지 않는 유일한 ‘딥 워크’ 시간대이다. 이 시간 동안에는 뇌가 맑고, 하루에 대한 압박이 시작되기 전이라 생각도 잘 정리된다.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전날 밤 정리한 우선순위에 따라 중요한 업무를 먼저 처리한다. 브랜드 디자인 제안서 초안, 클라이언트 피드백 정리, 콘텐츠 기획안 등 집중이 필요한 작업은 이 시간대에 해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이때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두고, 이메일이나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다. 단순히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아직 세상이 잠들어 있다는 고요함 속에서만 가능한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집안은 어둡고 조용하며, 스탠드 조명 하나에 의지해 노트북을 두드리는 감각은 매우 명상적이다. 보통 6시 30분쯤 되면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하고, 아이가 깰 가능성에 대비해 아침을 준비하기도 한다. 새벽 두 시간은 그 어떤 생산성 도구보다 확실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오전 7시~12시: 육아와 업무의 얽힘, 그리고 타협
아침 7시가 되면 아이가 깬다. 이때부터는 프리랜서가 아닌 ‘부모’의 역할이 우선시된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와 함께 식탁에 앉는다. 식사 후에는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등 오전 루틴을 거치게 된다. 이 시간대에는 아이가 나에게 거의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업무는 틈틈이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블록 놀이에 집중할 때, 식탁에서 노트북을 펼쳐 메일을 하나 보내거나 자료를 정리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틈새 업무’는 집중도는 낮지만, 루틴이 굳어지면 생각보다 많은 양을 해낼 수 있다.
보통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아이는 첫 낮잠에 든다. 이때는 다시 업무 모드로 전환한다. 대부분 1시간 안팎이기에, 이 시간에는 통화나 회의보다는 단기 업무나 클라이언트 피드백 처리, 자료 조사 등에 집중한다. 가끔은 이 시간 동안 간단한 집안일을 병행하기도 한다. 다림질, 식기 세척기 정리, 빨래 돌리기 같은 일들이 쌓이면 공간 자체가 산만해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라도 정리하는 것이 업무 집중에도 도움이 된다.
이 시기에는 다중 역할을 오가야 하므로 에너지 소모가 크다. 따라서 오전의 루틴은 ‘완벽’보다 ‘유연함’에 가깝게 설계해야 한다. 중요한 업무를 새벽에 해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전은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라 조정되는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오후 12시~17시: 업무의 골든타임? 아니, 체력과 집중력의 싸움
오후 12시가 되면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때는 식사 자체도 일이지만, 동시에 소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간단한 놀이를 곁들이며 자연스러운 시간을 보내려 한다. 식사 후에는 보통 산책을 나간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근처 공원을 돌고 오는 짧은 산책이지만, 이 시간이 주는 정신적 리프레시는 크다.
산책 후 돌아오면 14시에서 15시 사이에 두 번째 낮잠을 자게 된다. 이때가 사실상 하루 중 가장 ‘제대로 된 업무 시간’이다. 회의도 이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잡는다. 클라이언트와의 줌 미팅, 피드백 반영, 제작물 전달, 수정 등의 주요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이 시간에 몰아서 처리한다. 아이가 자는 동안 몰입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이기 때문에, 일정을 이 시간에 맞춰 조정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피로가 누적되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오전부터 계속 이어진 멀티태스킹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기 쉽다. 따라서 커피를 마시거나 짧은 스트레칭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한다. 가능하다면 5분 정도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고르기도 한다. 이런 짧은 회복 루틴이 오후 업무의 질을 결정하기도 한다.
저녁 17시
저녁 17시~밤 22시: 가족과 나, 그리고 느슨한 업무
아이의 두 번째 낮잠이 끝나는 16시 30분~17시 사이부터는 다시 ‘부모’ 모드로 돌아온다. 저녁 식사 준비, 목욕, 잠자리 준비 등 육아의 주요 루틴이 이어진다. 저녁에는 가급적 업무를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클라이언트 피드백이나 급한 전달사항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아이가 간식을 먹거나 그림책을 보는 짧은 틈을 활용해 대응한다.
아이를 8시쯤 재운 후, 나만의 시간이 다시 열린다. 이 시간에는 집중 업무보다는 정리 업무에 가깝다. 오전에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마무리하거나, 다음 날의 업무를 미리 정리한다. 짧은 일기를 쓰거나 오늘의 타임로그를 복기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는 피로가 누적되어 있으나, 감정적으로는 오히려 안정된 시간이다.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며 자신에게 ‘충분히 잘했다’는 감정을 심어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후 10시 전후로는 무조건 눕는다. 휴대폰도 멀리 두고, 얇은 책을 읽다 잠든다. 늦게 자면 다음 날 새벽 루틴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의 리듬을 지키는 핵심은 저녁 시간의 정돈에 달려 있다.
이 루틴은 이상적인 정답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현실의 산물에 가깝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새벽에 깨어 있던 날, 클라이언트의 급한 요청으로 저녁 시간을 통째로 빼앗긴 날, 예상보다 오래 잠든 아이 덕분에 집중도가 높은 작업을 완성할 수 있었던 날까지. 하루하루가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변수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동적인 삶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와중에도 나만의 리듬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리듬은 ‘정해진 스케줄’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돌아올 수 있는 기준점이다. 예를 들어, 새벽 시간의 업무 몰입은 나의 하루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다. 이 두 시간이 무너지면 하루 전체가 흐트러지기 쉬운데,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날의 수면도 조정하고, 저녁에는 휴식을 우선시하게 된다. 반대로, 낮잠 시간을 중심으로 계획을 짤 수 있다는 것도 큰 축이다. 아이의 수면 패턴이 일정해진 덕분에 업무 분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생겼고, 이는 프리랜서로서의 신뢰 확보에도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이 루틴을 지키며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자기 효능감’이다. 예전에는 하루가 끝나면 늘 “오늘도 제대로 못했어”라는 자책으로 마무리했지만, 지금은 “오늘은 60% 했지만, 그 60%는 내가 최선을 다한 결과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아이와 있었으니 아무것도 못했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사이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냈고, 그 기록들이 쌓여 내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감각은 누구도 대신 줄 수 없는 것이며,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 루틴을 통해 ‘육아와 일은 공존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물론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잘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완벽하게 분리하거나 완벽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그 둘은 서로를 방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아이를 통해 얻게 되는 창의적 영감, 유연성, 감정적 연결성은 업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업무를 통해 얻는 성취감은 육아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일정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향성이다. 하루를 30분 단위로 계획했다가 그 계획이 무너질 때 느끼는 좌절보다, 흐트러짐 속에서도 돌아올 수 있는 흐름이 있다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고 강력하다. 나는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노트북을 켠다. 아이가 깨어나기 전까지의 조용한 한 시간이 나를 다시 중심에 세운다. 그 한 시간으로 충분하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을 내일도 이어갈 수 있다는 루틴. 그것이 바로 ‘육아+프리랜서+재택근무’라는 삼중생활 속에서 내가 찾은 생존 전략이자, 지속 가능한 삶의 기술이다.
이 루틴이 누군가에게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이 같은 고민을 가진 누군가에게, 자신의 루틴을 설계하는 데 있어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매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나만의 삶이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