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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서 에너지로 – 루틴의 기준을 바꿔본 후기

by 뉴저지오맘 2025. 5. 6.

나는 오랫동안 시간 단위의 루틴에 의지해 살아왔다. 어느날 어떤 글에서 ‘시간 관리보다 에너지 관리가 먼저’라는 문장을 보게 되었다. 낯설지만 선명한 문장이었다. 일정이 아니라, 나의 상태에 따라 하루를 설계해보면 어떨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루틴을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 중심으로 재구성해보기로 했다. 이 글은 그 실험의 결과를 기록한 후기이다.

시간에서 에너지로 – 루틴의 기준을 바꿔본 후기
시간에서 에너지로 – 루틴의 기준을 바꿔본 후기


6시 기상, 7시 업무 시작, 12시 점심, 14시 회의, 17시 마감과 같은 명확한 스케줄은 나에게 통제감과 예측 가능성을 주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프리랜서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이 구조는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예상보다 늦게 자거나 갑자기 아플 때, 회의가 연기될 때, 혹은 단순히 내가 지쳐 있을 때 시간표는 힘없이 무너졌다. 계획은 지켜지지 않고, 하루의 끝엔 죄책감만 남았다. “왜 오늘도 못했을까?”라는 자책은 루틴을 반복할수록 쌓였고, 결국 계획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시간표보다 중요한 것: 나의 ‘고에너지 시간대’ 찾기

에너지 중심 루틴의 시작은 나의 ‘고에너지 구간’을 파악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에너지가 가장 잘 오르는 시간이 다르다. 어떤 이는 아침형 인간이고, 어떤 이는 밤에 집중력이 오른다. 나는 새벽 5~7시, 낮 14~15시 사이에 유독 집중력이 오르고, 오전 10시~12시, 오후 17시 이후는 피로가 몰려오는 구간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해 처음에는 하루를 시간 단위가 아니라 ‘에너지 상태’로 구분하여 기록했다. 예를 들어, 6시~8시는 ‘선명하고 조용함’, 10시~12시는 ‘육아 피로 누적’, 14시~15시는 ‘머리가 맑아짐’, 16시 이후는 ‘소진’ 등으로 상태를 메모하였다. 이를 일주일 이상 반복하자, 일정한 패턴이 보였다.
에너지 중심 루틴의 핵심은 이 ‘나만의 패턴’을 인식하는 데 있다. 고에너지 시간에 집중업무를 배치하고, 저에너지 시간에는 쉬운 일, 자동화된 일, 반복적인 일을 넣는 식으로 구조를 바꾸면 자연스럽게 효율이 오른다.

이러한 변화는 업무뿐 아니라 감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전에는 시간표가 무너질 때마다 스스로를 비난했다면, 이제는지금은 쉬는 시간이니까 쉬어야 한다 인식으로 전환되었다. 하루의 흐름을스케줄 아닌 상태 맞춰보니 자율성과 만족감이 커졌다.
나의 고에너지 구간은 루틴의 중심이 되었고, 이는 단순히 일정을 짜는 기준을 넘어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에너지 루틴을 위한 도구들: 집중, 회복, 자동화의 균형

에너지 중심 루틴은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체계적인 도구와 시스템이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내가 도입한 첫 번째 도구는 타이머와 로그 기록이다. Pomodoro 타이머로 25분 작업, 5분 휴식을 반복하며 집중 시간과 회복 시간을 명확히 나눴다. 이 간격은 신체 리듬과도 잘 맞았고, 특히 고에너지 시간대에는 두 세트 이상 연속 작업이 가능했다.
두 번째는 일의 구분이다. 나는 업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① 고집중 업무: 제안서 작성, 콘텐츠 기획, 회의 등, ② 반복성 업무: 피드백 정리, 자료 첨부, 클라이언트 응대 등, ③ 회복용 업무: 리서치, 자동화 세팅, 메일 정리 등이다. 에너지가 높은 시간에는 ①을, 낮은 시간에는 ② 또는 ③을 배치하였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구분이 하루의 완급 조절에 매우 유용하다.
세 번째는 회복 루틴의 정례화이다. 에너지 중심 루틴은 일의 분배뿐 아니라, ‘회복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산책, 간단한 스트레칭, 10분 명상, 음악 듣기, 커피 한 잔 등으로 짧은 회복 구간을 자주 넣었다. 과거에는 쉬는 시간에 SNS만 보다 다시 피로해졌다면, 지금은 의도적인 회복 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한 후 다음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도구의 목적은 내 상태를 더 잘 파악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알맞은 일을 배치하도록 돕는 데 있다. 단순한 시간 관리 앱을 넘어서, 에너지 순환을 설계하는 구조가 되었을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났다.

가족 생활과의 조율: 루틴에 사람을 넣는다는 것

에너지 중심 루틴을 도입하면서 가장 고민한 지점은 가족, 특히 아이와의 생활 리듬과의 조율이다. 아이는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 낮잠 시간의 변동, 감정 기복 등 예상하지 못한 요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루틴 안에 여백’을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오전 10시~12시는 아이와의 놀이 시간으로 지정하되, 그 사이에 나의 에너지 흐름이 좋다면 20분 정도 짧은 업무를 넣기도 한다. 반대로 오후 4시쯤 아이가 피곤해 보이면 루틴을 멈추고 함께 휴식을 취한다. 시간표 중심 루틴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에너지 중심 루틴은 융통성을 허용하는 구조라 부담이 적다.
또한 남편과의 루틴 공유도 중요했다. 나의 고에너지 구간에 맞춰 집중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짧게라도 아이를 봐달라고 요청하거나, 식사 준비를 분담하는 방식으로 협업했다. 에너지 중심 루틴은 나만의 계획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족과 서로의 에너지 흐름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루틴이 ‘나만 잘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의 컨디션, 배우자의 일정, 외부 일정 등도 하나의 에너지 흐름으로 본다면, 루틴은 더 유연하고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결국 에너지 중심 루틴은 생활의 흐름에 사람을 넣는 방식이며, 고립된 스케줄이 아니라 연결된 구조로 자리잡게 된다.

성과보다 회복의 속도가 빠른 삶으로

시간 중심 루틴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정해진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일을 처리했는지가 중요해진다. 반면 에너지 중심 루틴은 회복 속도와 일의 깊이를 우선시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무리해서 억지로 마무리한 일과,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에서 몰입하여 해낸 일은 질적으로 다르다.
에너지를 기준으로 움직이니, 하루의 피로도도 다르게 느껴졌다. 과거에는 일정이 끝나면 온몸이 축 처졌고, 어떤 날은 저녁에 아무 말도 하기 싫을 만큼 지쳤다. 하지만 지금은 적절한 회복 루틴이 반복되고, 고에너지 구간만 집중해서 활용하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가 끝났을 때 "오늘은 충분히 괜찮았다"는 감각이 남는다.
또한 실패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오늘은 시간표를 못 지켰어"라는 죄책감이 컸다면, 지금은 "오늘은 에너지가 없어서 쉬었다"는 자기이해로 바뀌었다. 회복이 빠르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고, 이는 성과보다 더 깊은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일이 많고 바쁜 날일수록, 더더욱 에너지 루틴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이 많을수록 시간보다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묻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를 지키는 방식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에너지 중심 루틴을 실천해보고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루틴이란 결국 시간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배려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전의 나는 시간을 잘게 쪼개고, 분 단위로 계획표를 짜면서 그 안에 나를 끼워 넣었다. 효율성, 생산성, 성과 중심의 사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시간표는 점점 나를 억누르는 구조가 되었다. 예측 가능한 하루를 만든다는 환상 아래, 감정적 상태나 육체적 피로도는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하루가 조금만 어긋나도 자책이 따라왔다.
그러나 에너지 중심 루틴은 전혀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떤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 작은 전환이 실은 엄청난 심리적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예전에는 일을 못하면 "나는 게으르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지금은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효능감은 단순히 많은 일을 해냈다는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 상태에 맞춰 선택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무엇보다도, 이 루틴은 불확실한 삶에 탄력성을 부여한다.
육아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클라이언트 일정도 예고 없이 바뀐다. 내 컨디션도 매일 다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과 쉼, 집중과 회복, 외부 일정과 개인 루틴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나는 어떤 변화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게 된다.
흐트러져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구조, 무너져도 회복 가능한 리듬, 그것이야말로 내가 찾고 싶었던 루틴의 본질이었다.
이 루틴은 더 이상 ‘지켜야 할 의무’가 아니다. 오히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회복의 안전망이다.
특히 하루가 끝났을 때의 느낌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오늘은 이것도 못했고, 저것도 못했어”라는 결핍감이 컸다면, 지금은 “오늘은 에너지가 있었던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을 했고, 남은 시간은 잘 쉬었다”는 감각이 남는다.
이 차이는 단순히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하루를 실패로 규정짓지 않고, 흐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삶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준다. 자기 자책은 줄고, 자기 돌봄은 늘어난다.
또한 에너지 루틴은 장기적으로 자기 일의 퀄리티를 높이는 루틴이기도 하다. 피곤한 상태에서 억지로 만든 결과물은 표면적 완성도는 유지할 수 있어도 깊이가 없다. 반대로 에너지가 충만한 순간에 집중해 만든 작업은 더 설득력 있고, 더 오래가는 결과를 만든다. 그 차이는 결국 포트폴리오에 남고, 나의 전문성을 결정짓는다.
즉, 에너지 루틴은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신뢰를 만드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루틴은 삶의 균형을 회복하게 만든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을 함께 할 때, 나라는 존재는 항상 가장 마지막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에너지 루틴 안에서는 ‘나의 상태’가 가장 먼저 고려된다. 그것은 곧 ‘나도 하나의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회복하게 만든다.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일정을 바꾸고, 내가 지치지 않기 위해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태도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한 것이다.
결국 루틴이란, ‘내가 내 편이 되어주는 일상적 연습’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흐름이 있다. 어떤 이는 새벽형이고, 어떤 이는 느리게 시작하는 저녁형이다. 어떤 날은 격렬한 집중이 필요하고, 어떤 날은 조용한 회복이 전부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흐름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외부의 틀에 맞추기보다, 내 안의 에너지 흐름에 맞추어 일정을 설계할 수 있다면, 루틴은 비로소 삶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구조가 된다. 오늘도 나는 새벽의 맑은 집중 속에서 하루를 열고, 오후의 무기력함 속에서도 회복을 허용하며, 저녁엔 다시 가벼운 마무리로 하루를 닫는다.
그 안에서 삶은 조용히, 그러나 안정감 있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나를 믿고, 나의 리듬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한 문장이, 루틴을 넘어 삶의 중심이 되었다.